이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 대한제국기에 이르는 3세기 간의 중앙재정의 지출과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간과해왔던 조선후기 중앙재정의 지출구조와 그 변화를 명확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의 재정제도가 갖는 의의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재정지출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활동하였던 공인 및 시전 등의 상인조직의 존재양식을 중앙재정 지출과의 관련 속에서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재정과 시장을 두 축으로 하는 조선후기 경제체제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2005년 8월에 "18세기-20세기초 조선왕조의 경제체제: 재정과 시장을 중심으로"라는 과제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기초학문지원육성 인문사회분야지원사업의 한국근현대분야)을 받았으며, 현재 교수 4명(외국인 교수 1명 포함), 박사급 연구인력 2명, 박사과정 2명, 석사과정 2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본 연구는 2010년에 그 간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경제체제론의 접근』(이헌창 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로 출판하였으며,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조선왕조의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연구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하는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의 목차와 저자이다.

제1장 총론 (이헌창)
제I부 재정
제2장 조선후기 중앙재정의 운영: 『六典條例』의 분석을 중심으로 (김재호)
제3장 선혜청의 수입·지출 구조와 재정운영 (박기주)
제4장 조선후기 왕실재정의 구조와 규모: 1860년대 1司4宮의 재정수입을 중심으로 (조영준)
제5장 『賦役實摠』에 나타난 조선후기 지방재정의 규모와 특질 (이우연)
제6장 17,18세기 환곡에 대한 제도론적 접근: 재량적 규제체계의 역할을 중심으로 (박이택)
제II부 재정과 시장의 관련
제7장 조선후기 중앙재정과 銅錢: 『賦役實摠』을 중심으로 (김재호)
제8장 貢人에 대한 경제제도적 이해 (박기주)
제9장 조선후기 貢價의 체계와 추이 (이헌창·조영준)
제10장 19세기 司饔院 分院의 운영과 몰락 (박희진)
제III부 서울 시장
제11장 시전상인과 국가재정: 가와이[河合] 문고 소장의 綿紬廛 문서를 중심으로 (須川英德)
제12장 시전-국가 간 거래와 19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위기: 綿紬廛을 중심으로(Owen Miller)
제13장 19세기 서울 市場의 역사적 특질 (이영훈)
제14장 조선왕조의 經濟統合體制와 그 변화에 관한 연구 (이헌창)

2005년 이후의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차 연도 개요 (2005년 9월 ~ 2006년 8월) : 조선후기 재정자료의 수집과 DB화
제1차 연도는 재정운영의 기본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재정지출 규모 및 시장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재정지출과 貢人·市廛의 관련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조사하고 입력하는 것을 연구과제로 한다. 추가적인 자료조사가 필요하지만, 각각에 해당하는 자료로는 『萬機要覽』, 각종 『定例』류, 『度支別貿』, 『度支準折』, 『貢物定案』, 市廛관계자료가 있다.
주요 연구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재정운영의 기본구조 파악
(2) 재정지출 규모 및 시장과의 관계 파악
(3) 재정지출과 貢人·市廛

2차 연도 개요 (2006년 9월 ~ 2007년 8월) : 왕실재정 및 갑오개혁 이후 재정자료의 수집과 DB화
제2차 연도에는 제1차 연도에서 끝내지 못한 DB화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갑오개혁 이후의 자료의 수집과 DB화를 수행한다. 특히 제2차 연도는 국가재정자료 뿐 아니라 왕실재정에 관한 자료를 입력한다. 즉, 갑오 이전에 있어서는 內需司 및 各宮의 재정운영 관계 자료, 갑오개혁 이후의 재정자료의 수집 및 DB화와 관련해서는 갑오개혁기의 재정운영상태를 보여주는 자료와 대한제국기의 왕실재정 운영을 보여주는 자료 등이다.
주요 연구내용은 아래와 같다.

(1) 內需司 및 各宮의 재정운영
(2) 갑오개혁기의 재정운영
(3) 대한제국기의 왕실재정 운영

3차 연도 개요 (2007년 9월 ~ 2008년 8월) : 분석과 종합
제3차 연도의 연구는 분석과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연도와 제2차 연도의 작업을 통해서 중앙재정의 지출구조와 시간적인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적인 조사와 자료입력을 수행하고 제3차 연도에는 데이터베이스를 최종적으로 정비하고 다음과 같은 연구과제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분석한다.
주요 연구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조선후기 재정의 지출구성은 어떠하였으며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2) 재정수입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지출되었는가?
(3) 재정지출은 조선후기 시장경제의 동향을 어떻게 규정하였는가?
(4) 어떠한 경로로 왕실에 대한 供上을 위한 물자가 조달되었으며, 왕실재정은 국가재정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점하고 있었는가?
(5) 갑오개혁이 왕실재정에 가한 충격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6) 조선후기의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
(7) 국가와 시장 간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본 조선후기의 경제통합의 비교사적 특질은 무엇인가?

기존의 조선후기 연구는 개항 이후 제국주의 침략이 전개되기 이전에 조선사회가 자생적으로 근대사회로 이행하고 있었음을 보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자본주의 맹아론” 또는 “내재적 발전론”으로 지칭되는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으며, 특히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 조선전기와 구별되는 조선후기 사회의 새로운 양상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상평통보의 발행과 통용으로 대표되는 ‘상품화폐경제’의 발전, 시전(市廛)과 공인(貢人)과 같은 특권 상인과 대립하는 비 특권상인으로서 ‘사상(私商)’의 대두,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반영한 재정 운영의 ‘화폐화’가 논의의 초점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조선후기의 발전상이 개항 이후 한국사의 전개와 어떻게 연결되는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후기는 단지 일본을 위시한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싹(‘맹아’)이 잘리고‘왜곡’되는 수동적 대상일 뿐이며, 이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한국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타향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 연구는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는 ‘낭만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지양 없이 한국사 전개에 대한 ‘리얼’한 이해는 바라기 어렵다. 또한 조선후기 연구가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기 위하여 스스로 근대화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제한 된다면 조선후기 사회의 전체상에 대한 이해도 요원할 것이다.
조선후기의 새로운 변화 양상을 성급하게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예단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를 낳고 있었던 조선왕조의 경제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앞의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이 “경제체제론의 접근”이라고 부제를 달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일단을 표현한 것이다. “체제”가 “체제”일 수 있는 것은, 개별 구성요소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전체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구성요소의 성격이 전체 체제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연구에서 전체 경제체제에 대한 의식 없이 단편적으로 포착되었던 ‘상품화폐경제’, 또는 ‘시장경제’의 발달 양상들이 전체 경제체제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기존 연구는 ‘시장’을 전체 경제체제와 관련 없이 발전적 양상만을 포착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 시장이 전체 경제체제에 의해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는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경제체제에 있어서 국가의 재정운영에 의해서 수취되고 방출되고 운송되는 물화의 흐름, 곧 “국가적 물류”가 갖는 의미는 중대한 것이었다. 본 연구 프로젝트가 ‘시장’을 ‘재정’과 연관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국가의 ‘재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국가적 물류”가 ‘시장’을 규정하고 있는 측면이 조선왕조 경제체제를 이해함에 있어 불가결하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조선후기의 경제체제는 기존의 “자본주의 맹아론” 또는 “내재적 발전론”에서 보여주었던 역사상과는 매우 상이한 것이었다. 그 일부만을 들어보면, 조선왕조는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유통시키고 있었지만, 중앙재정에서 차지하는 동전의 비중은 1/3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중앙재정에 의한 동전의 수취(‘부세 금납화’)는 시장 상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공급하는 공인들에게 적용된 가격은 장기간 고정되어 있었으며 같은 물건이라도 조달처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다. 서울을 중심을 활동한 공인과 시전상인은 국가에서 지불하는 가격이 시가와 괴리된 채 장기간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공인과 시전의 조직도 가입과 탈퇴가 빈번하였으며 국가에 물자를 공급하고 대가를 받아 이익을 분배하는 조직에 가까웠다. 이들은 반드시 점포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 상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존재였다.